고쳐 씀에 대한 짧은 단상
방금 드라이버 세트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상자를 떨어뜨려서 박살났는데, 예전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 – 무려 드라이버 세트를 통째로 새로 사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해 버리고 말았다. 옛날이라면 자연히 순간접착제를 꺼냈을 일인데, 어쩌다가 내가 변해 버린 걸까?
드라이버는 모두 멀쩡하고, 플라스틱 상자의 뚜껑이 깨졌을 뿐이다. 뚜껑을 다시 붙여도 되고, 아니면 드라이버를 그냥 연필꽂이에 꽂아 둬도 그만이다. 그럼에도 나는 문득 멀쩡한 6개의 드라이버, 드라이버를 끼울 수 있는 상자 몸체, 드라이버 크기가 적힌 종이를 포함한 전부를 새로 사 버릴 생각을 하고 만 것이다.
옛날엔 물건이 망가지면 꿰매고, 붙이고, 사포로 다듬어 가면서 쓰곤 했는데 요즘은 그냥 새로 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생각해 보니 결국 시간이 가지는 가치의 문제였던 것 같다. 물건을 고치는 데에는 약간의 돈과 많은 시간이 들지만, 물건을 새로 사는 데에는 조금 더 많은 돈과 훨씬 적은 시간이 든다. 결국 내가 물건을 고치는 데에 소비하는 시간의 가치가 물건의 가치보다 크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트북쯤 되는 물건이 망가지면 어떻게든 고쳐서 써 보려고 하겠지만, 3000원짜리 드라이버 세트의 뚜껑을 고치느라 십여 분씩 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김밥 한 줄이 4000원씩 하는 시대에, 3000원은 밥 한 끼 가격도 되지 않는다. 물가는 모든 면에서 올랐지만, 생활비가 오르는 것에 비해 이런 경공업 공산품의 가격은 적게 올라서 이제는 오히려 더 저렴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 착각일 수도 있다). 그러면 더욱이 밥 한 끼도 안 되는 가격의 무언가를 고치려고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결국 버려지는 물건이 늘어나고, 그 사회적 비용은 다시 우리가 치르게 되리라는 생각도 머리를 스친다.
그렇게 돈 삼천 원, 시간 십여 분, 쓰레기 백여 그램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십 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쓰고는, 망가진 뚜껑은 그냥 셀로판 테이프로 대충 기워 놓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잡스러운 글을 쓰느라 수십 분을 더 쓰게 되었다.
비효율적인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적당히 비효율적으로 살아야겠다.
- 태그: #단상
Dani Soohan Park (@heart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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